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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하지 않는 일을 10년만 해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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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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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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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송도 중학교에 다닐 때 석주명 선생님으로부터 생물학을 배웠다. 3학년, 내 나이 14세때의 일이었다. 석 선생님은 수업을 끝내고 남은 시간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학자는 세월 속에 씨를 뿌리며 남이 하지 않는 일을 적어도 10년 이상 하면 반드시 성공한다. 이 석주명이 바로 산 표본이다. 남이 하지 않는 조선 나비 연구를 죽어라고 한 결과 이제는 조선인 학교의 일개 조선인 교사가 세계적인 학자가 되었다. ‘조선산첩류목록’의 저술에 10년 이상을 바친 결과이다.
나는 그 때 너무 어려서 나비 연구는 뭣땜에 하며, 학자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선생님의 이 ‘열변’은 내 뇌리 한구석에 묻친 채 세월이 흘렀다.
그 후 꼭 20년이 지나 34세 때 나는 전북 전시연합대학에서 미국문학사와 미국문학 강독 두 강좌를 맡게 되었다. 6ㆍ25 동란 와중이라 교재가 문제였다. 전주에 있는 미국문화공보원을 이용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곳에는 포켓판 소설류가 좀 있어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무기여 잘 있거라’를 대출해서 교재로 썼다. 헤밍웨이와의 초대면이었다.
그 후 다시 해설서가 없나 하고 문화공보원 서가를 뒤지다 장정이 기가 막힌 칼로스 베이커의 ‘예술가로서의 작가 헤밍웨이’(1952)를 알게 되었다. 난해한 연구서였지만 방법론의 참신성에 매료되었다. 그 후 이 저서에 방법론의 원리를 제공한 것이 르네 웰렉크와 오스틴 워렌이 공저한 ‘문학의 이론’(1948)의 ‘신비평’(분석비평)이란 것도 알게 된 이 우물 안 개구리는 서구 석학들의 심오한 학문에 경악하여 나도 학자가 되었으니 뭔가 남길만한 업적을 쌓아야 겠다고 결심했다.
그 때 20년 간이나 내 머리 속에서 잠자고 있던 석주명 선생님의 옛 말씀이 번뜩 깨우쳐졌다. 나는 옛 스승의 교훈에 따라 40대 10년을 바쳐 ‘헤밍웨이 문학의 연구’(1968), ‘헤밍웨이 평전’(1974), ‘헤밍웨이 전집 번역’(1959~1961)을 완성했다.
그러나 이 작업은 내가 죽은 후에도 남을 만한 업적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경탄할 만한 후진들의 업적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50여권의 번역서도 이제 후진들에 의하여 개역됐으니 나의 번역물은 역사 속에 매몰된 셈이 됐다.
이때 다시 석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석 선생님이 조선 나비 연구에 생애를 바치신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세계 문학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역사를 쓰기로 했다. 석 선생님이 나비 하나를 좇아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셨듯이 나도 자료 하나를 찾아 지구의 절반을 두 번이나 돌았고 그 결과는 ‘세계문학이입사연구’(전8권)(1975~2001)로 묶어졌다. [자료=조선/010203/김병철 중앙대명예교수ㆍ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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